해외시장조사, 정보 취합보다 진입 장벽 확인이 먼저다

해외시장조사는 단순히 시장 규모와 성장률, 경쟁업체 정보를 찾아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실제 수출을 시작하기 전에 해당 국가의 수입 규제, 인증 요건, 관세, 유통 구조와 같은 진입 장벽을 먼저 확인해야 예상하지 못한 실패를 줄일 수 있습니다.

20년간 해외영업과 수출입 실무를 경험하며 직접 겪었던 사례를 바탕으로, 해외시장조사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할 핵심 항목과 실제 시장 진입 가능성을 판단하는 방법을 정리했습니다.

수천만 원짜리 해외시장조사가 실패한 이유

많은 초보 셀러와 실무자들이 해외시장조사를 시작할 때 유관기관의 수출지원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신청합니다.

정부 지원을 받아 상당한 예산으로 전문 수행기관에 위탁하면, 내 제품에 딱 맞는 완벽한 현지 분석 결과가 나올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과거에 액상차 제품을 들고 유럽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이 사업에 참여했던 적이 있습니다.

2,000만 원 상당의 예산이 투입되었고, 약 3달간 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계약한 기관의 전문 연구원이 직접 해외 현장에 나가 깊이 있게 조사해 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제 손에 쥐어진 결과물은 실무에 적용하기 민망한 수준이었습니다.

조사업체가 현지 유학생이나 교민분을 섭외하여, 대형 하이퍼마켓에 가서 사진 몇 장 찍어온 게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가 요청한 액상차나 음료 베이스에 대한 전문적인 접근이 아니라, 엉뚱하게 잼 사진만 찍어오거나 카페·펍용 시럽 사진만 찍어서 가격표와 함께 던져주는 식에 불과했습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현지 시장 분석을 하니 깊이가 있을 리 만무했고, 인터넷에 떠도는 영문 자료들을 짜깁기한 겉핥기식 보고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후 유명 무역 플랫폼 기관을 통해 현지 블라인드 테스트와 설문조사까지 추가로 진행해 보았지만, 비용과 정성에 비해 실제 바이어 발굴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액상차의 특성을 모른 채 거시적인 통계로만 접근하려 했던 값비싼 시행착오였습니다.

해외시장조사를 하기 전에 먼저 내 제품을 정확히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제품의 특성과 경쟁 제품의 차이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장조사부터 시작하면, 결국 엉뚱한 데이터를 모으게 될 수 있습니다. 제품 이해도를 높이는 방법은 [해외영업의 시작, 제품 이해도가 스펙보다 중요한 이유]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실무자가 주도하지 않는 수동적인 해외시장조사가 왜 실패하는지 뼈저리게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진짜 해외시장조사의 출발점은 ‘HS CODE’ 확정이다

이 실패들을 겪으며 깨달은 무역 실무의 진실이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해외시장조사는 내 제품이 잘 팔릴 만한 유망한 국가를 찾아내는 화려한 데이터 수집 과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제품이 진입했을 때 발생할 리스크를 유발할 국가들을 하나씩 소거해 나가는 잔인한 ‘진입 장벽 확인’ 작업이어야 합니다.

책상 앞에 앉아 가장 먼저 해야 할 실전 조사의 출발점은 바로 내 제품의 ‘HS CODE’를 명확하게 확정하는 것입니다.

이 번호 하나가 해외시장의 모든 문을 열고 닫는 열쇠가 됩니다.

HS CODE가 확정되면 관세청이나 무역 통계 사이트를 통해 국가별, 품목별 실제 수입액 데이터를 조회해야 합니다.

수입액 데이터만 냉정하게 뜯어봐도 전체 국가 중 우리가 피해 가야 할 국가의 50%는 저절로 분류됩니다.

“이 나라는 인구도 많고 시장성이 좋을 것 같은데 왜 통계상 수입액이 제로(0)에 가깝지?”라는 의문이 생겨야 진짜 실무적인 해외시장조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초보 실무자들이 반드시 주의해야 할 ‘HS CODE 통계의 치명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이 코드는 생각보다 굉장히 넓은 의미를 담은 광의의 개념(4자리, 6자리)이기 때문에, 통계 자료에 나오는 숫자가 우리 제품과 100% 일치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2106이라는 코드는 ‘따로 분류되지 않은 조제 식료품’을 뜻합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간 2106.90은 ‘기타 조제 식료품’이 됩니다.

즉, 명확한 카테고리가 없는 온갖 제품들이 이 ‘기타’라는 주머니 속에 다 섞여서 통계 데이터로 잡힌다는 뜻입니다.

내 제품의 수입액인 줄 알고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현지에서 엄청나게 유행하는 다른 엉뚱한 제품 때문에 데이터 착시 현상이 일어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국제 공용으로 쓰는 코드는 딱 6자리까지입니다. 나머지 뒷자리(Hsk Code 등)는 국가마다 다르게 운영됩니다.

따라서 내 제품이 6자리 안에서 완벽하게 특정되는 명확한 제품군이라면 이 통계를 전적으로 신뢰해도 좋지만, 만약 ‘기타(Others)’라는 워딩 아래로 분류되는 제품이라면 그 통계 숫자를 맹신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이 숨겨진 함정까지 눈여겨볼 줄 알아야 실패 없는 해외시장조사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내 제품의 관세율은 관세청 또는 관세법령정보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외시장조사의 핵심, 관세와 비관세 장벽 확인

통계 조사를 마쳤다면, 그다음으로 확인해야 할 가장 높은 장벽은 바로 ‘관세’와 ‘비관세 장벽’입니다.

이 역시 해외시장조사 단계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필수 지표입니다.

먼저 각 국가의 관세표를 조회하여 해당 품목의 국가별 수입 관세를 파악해야 합니다.

경쟁국 제품은 FTA 협정 덕분에 관세 0%로 무혈입성하는데, 우리 제품은 높은 관세율에 가로막혀 현지 판매가가 치솟는다면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가격 경쟁력에서 처참하게 밀립니다.

이런 관세 장벽이 높은 국가는 미련 없이 처음부터 제외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관세는 낮은데 통계상 수입량이 없다면, 그다음 단계로 강력한 ‘비관세 장벽’이 숨어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인터넷 구글링만으로는 정확한 데이터를 찾기 어렵습니다.

이때 제가 활용하는 실전 팁은 KOTRA(코트라) 현지 해외무역관의 전문 조사 서비스를 신청하는 방법입니다.

간혹 이를 무료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 공짜가 아닙니다.

기업이 합당한 선금을 전액 완료한 다음에야 비로소 착수하는 유료 사업이며, 그만큼 값비싼 비용을 치르고 얻는 실전 결과물입니다.

비용을 지불하는 만큼 질문을 아주 정밀하게 던져야 현지 무역관을 통해 “이 국가는 위생 인증 요건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까다롭다”, “수입 쿼터 제한이 묶여 있다”, 또는 “특정 성분 때문에 아예 수입 금지 품목이다” 같은 생생하고 확실한 거절 사유를 받아낼 수 있습니다.

돈을 제대로 쓰고 리스크를 쳐내는 실전 해외시장조사 방식입니다.

유관기관 자료는 ‘안내서’일 뿐, 마스터키가 아니다

코트라, 무역협회, 혹은 식품 분야의 aT 등 각 산업별 유관기관이 제공하는 국가별 시장 분석 보고서는 훌륭한 ‘안내서’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내 비즈니스의 성공을 보장하는 ‘마스터키’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보고서는 거시적인 트렌드만 보여줄 뿐, 내 제품의 유통기한, 포장 규격, 마진 구조, 그리고 OEM/ODM 대응 능력까지 고려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성공적인 해외시장조사의 핵심은 남이 만들어 준 화려하고 두꺼운 보고서를 정독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해외시장조사를 통해 진입 장벽이 높은 국가를 먼저 걸러냈다면, 그다음에는 남은 국가 가운데 실제로 우리가 공략할 타깃 국가를 선별해야 합니다.

국가별 시장성과 경쟁 상황을 비교하여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법은 [타깃 국가 선별 전략, 해외영업 성공률을 높이는 방법]에서 이어서 설명합니다.

막연한 기대를 버리고 데이터로 진입 장벽을 먼저 확인하십시오.

그것이 수천만 원의 비용과 수개월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진짜 시장을 찾아내는 베테랑의 방식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렇게 해외시장조사를 통해 1차로 걸러낸 국가들 가운데 실제 계약 가능성이 높은 국가를 선별하는 저만의 실전 방법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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